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배급사 제공


올해 추석 극장가에는 연휴를 겨냥한 대작이 없다. 하지만 여느 해보다 대풍작이다. 실망을 주던 뻔한 시즌 영화들이 사라진 밥상은 질 좋고 다양한 영화들의 성찬이다. 한국 영화부터 할리우드 작품까지, 대작 상업영화 대신 눈과 귀가 즐겁고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영화들이 가득하다. 안 보는 사람이 손해다.
연휴에 가족과 함께 볼 단 한편의 영화를 고른다면 ‘사람과 고기’(7일 개봉)다. 지난해 초 잔잔한 돌풍을 일으킨 영화 ‘소풍’처럼 ‘사람과 고기’는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의 냉정한 현실을 담으면서도 유쾌하고 박력 넘치며 이 모든 게 내 부모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살가운 작품이다. “집은 상보 주식
있고, 돈은 없고, 자식들은 싸가지가 없는” 70대 노인 형준(박근형)과 집도 돈도 자식도 없는 우식(장용)은 폐지를 줍다 시비가 붙으며 안면을 튼다. 근근이 홀로 밥을 차려 먹는 이들은 길에서 좌판을 깔고 손자를 홀로 키운 화진(예수정)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한다. 주머니 털어봐야 만원짜리 한장 나오기 힘든 세 노인은 우식의 제안으로 고깃집을 돌아마스크수혜주
다니며 ‘먹튀’를 시작한다.



영화 ‘사람과 고기’. 배급사 제공


언뜻 배고프고 가난한 노인들의 일탈기 같지만 영화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을 담고 있다. 돈도 가족도 친구도 사라지며 맞닥뜨려야 하는 노에이스테크 주식
년의 고독에 대한 성찰이다. 노년을 다루면서도 영화 전개 방식은 젊고 신선하다. 노년에 관한 유쾌한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떠올리게 하는 전복의 통쾌함이 가득하다. 연기 경력 도합 172년이라는 박근형과 예수정,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장용의 노련한 연기와 미세한 감정까지 또렷이 전달하는 대사는 십년 묵은 귀지를 파낸 듯 귀에 쏙쏙 2010년주식
들어온다. 먹고살기 빠듯한 딸과 엄마의 애증을 섬세하게 다룬 ‘홍이’(상영 중)도 모녀 간 극장 나들이에 적합한 작품이다.



영화 ‘보스’. 배급사 제공


조우진, 정경호, 박지환이 주연한 ‘보스’(3일 개봉)는 200수수료저렴한증권사
0년대 초 조폭코미디의 재림을 떠올리게 하는 코미디 영화다.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중국집 요리사로 살아가려는 순태(조우진)와 역시 손 씻고 춤의 세계에 빠져든 강표(정경호)는 갑작스러운 보스의 부고로 조직을 물려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와중에 조직은 다른 범죄에 휘말리고, 판호(박지환)와 2인자 인술(오달수)까지 설치면서 위기에 놓인다. 신분을 숨기고 순태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태규(이규형)의 코믹 연기가 관전 포인트. 이 밖에 폴 토머스 앤더슨의 최신작이자 그의 작품 가운데 대중적인 재미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먼저 개봉한 북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상영 중), 가열되고 있는 찬반 논쟁이 궁금증을 자극하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상영 중)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영화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 배급사 제공


상영 중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을 비롯해 볼만한 애니메이션도 한가득이다. 가장 반가운 건 원작 만화 공개 40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7일 개봉)다. 그때 그 시절 커트 곱슬머리에 빨간 하트 핀의 하니가 돌아왔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영화가 시작할 때 로고송처럼 잠깐 나오는 그 시절 주제가가 원작 팬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다. 작품은 추억팔이에 머물지 않는다. 2025년의 관객들도 재밌게 볼 만한 소재와 빠른 속도감, 녹슬지 않은 유머 감각과 단순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하니의 학교로 전학 온 나애리와 하니는 서로에 대한 경쟁심에 불타면서도 자신들을 위협하는 공적이 나타나자 팀워크를 다져나간다. 도심을 질주하는 파쿠르 경기를 접목시켜 달리기라는 소재의 협소함을 확장시키고, 달리기 자체가 주는 쾌감을 극대화한 연출이 돋보인다. 경쟁 대신 우정과 연대를 강조한 주제의식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달려라 하니’처럼 달리기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100미터.’(8일 개봉)는 걸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뛰어난 작품이다. 여러모로 지난해 애니 팬들을 열광시켰던 ‘룩백’을 연상시키는 청춘 드라마다. 타고난 달리기 천재 토가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현실을 잊기 위해 무작정 달리는 친구 코미야를 만난다. 대결을 신청했던 코미야는 한번의 시합 후 사라진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토가시는 부담감 때문에 달리기에 회의를 느끼는데 일본 기록에 도전하는 코미야가 눈앞에 나타난다. 데즈카 오사무 만화대상에 서 최연소 수상을 기록한 우오토의 원작을 바탕으로 100미터 달리기 십여초에 담길 수 있는 인생의 꿈과 욕망, 성취와 좌절, 심도 깊은 철학까지 담은 작품이다. 달리는 그 순간의 심장 조이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작화도 빼어나다.



영화 ‘100미터.’. 배급사 제공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연의 편지’(상영 중)는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이 물씬한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책상 서랍에서 우연히 의문의 편지를 발견한 전학생 소리가 편지 속 힌트로 이어지는 다음 편지들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친구를 만나고 마음이 서로 연결되는 설렘을 수채화풍 그림체에 담아 국내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악뮤’의 이수현이 주인공 소리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 밖에 ‘브레드이발소: 베이커리타운의 악당들’, ‘바다 탐험대 옥토넛: 콰지의 깜짝 어드벤처’, ‘개비의 매직하우스 극장판’ 등 고정팬을 거느린 애니메이션들도 대거 극장가에 걸렸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